정조가 보위에 오르기 전 세손 시절엔 익위사(翊衛司)란 조직이 세손의 안위를 살폈는데 드라마에선 이 익위사의 관원들이 정조가 왕이 된 후 홍국영의 건의로 설치된 숙위소에 고스란히 합류하게 되죠. 영조시대에는 세손을 지키는 익위사외에 영조를 호위하는 군사조직이 별도로 있었으니 바로 용호영(龍虎營)입니다. ☞ 용호영 (龍虎營) 전신이었던 금군은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의 소위 3위가 있었는데, 효종 3년에 내삼청을 설치하고 금군을 맡아 지휘하게 하였다가 영조 31년(1755)에 용호영(龍虎營)으로 개명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영조가 승하한 후 정조가 보위에 오르는데 내금위장의 역할이 컸었는데 이때는 이미 내금위가 용호영으로 바뀌었으니 조금 이상하네요. 아무튼, 용호영은 병조판서가 책임자로 있었으며 인원은 1,..
사도세자는 혜경궁 홍씨에게서 의소세자(요절)와 정조를, 숙빈 임씨에게서 은언군과 은신군을, 경빈 박씨에게서 은전군을 생산했으므로 은언군은 정조의 이복동생이 됩니다. 따라서 은언군의 아들인 이담은 정조의 조카가 되구요. 은언군은 욕심이 많아 시전 상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나중엔 시전 상인에게 빚을 진 것을 할아버지인 영조가 알고 유배를 당하기도 했던 인물이었으며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 노론 벽파를 조종하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세손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세손으로 낙점했던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드라마에서는 홍국영이 죽은 누이(원빈)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다는 핑계로 은언군의 장자인 담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는 데 성공하는데요. 원빈의 양자는 결국 정조의 양자이므로 정조는..
조선시대의 경제는 한성의 시전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실과 관아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대신에 도성 내에서 독점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금난전권(禁亂廛權)입니다. 금난전권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난전에 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난전은 시전에서 취급한 물종과 상인의 주소, 성명을 등록한 상행위자의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자나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성안에서 몰래 판매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생계형 상인들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이래 난전의 등장은 곧 시전상인의 상권을 침해하였고, 이에 시전상인은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만들기 위해 난전 금지를 정부에 요청하였는데요. 이에 정부는 재정수입을 늘릴 목적에서 국역을 부담하는 육의전을..
조선시대에는 천주교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4차례 있었는데요. 국사시간에 귀가 아프게 들은 바 있는 바로 "4대 박해"라 불리는 것입니다. 정조 다음에 왕이 된 순조~고종 때까지의 4차례에 걸친 천주교탄압을 통칭하는 말이니 정조와 천주교 탄압은 무관한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참고. 4대 박해 요약 -1801년의 신유박해 - 순조 - 노론 벽파에 의한 대대적 정치적 박해 정약종, 이승훈, 주문모 순교, 정약용, 정약전 유배 (약 100명이 처형되고 약 400명이 유배) -1839년의 기해박해 - 헌종 - 샤스탕, 앙베르, 모오방 프랑스 선교사 순교 (약 100명이 처형) -1846년의 병오박해 - 헌종 - 김대건 신부와 그 와 관련된 천주교인 9명이 순교 -1866년의 병인박해 - 고종 - 최대 ..
홍국영은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등이 포진되어있는 외척세력 풍산홍씨의 일문이었으나 그의 아비가 그다지 정치에 관심이 없던 터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드라마 초반에서 보이는 홍국영의 행태처럼 그의 청년기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 탓에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웠을 테니 과거급제도 힘겨워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실제로 문헌에는 그가 지닌 지적 역량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시강원 설서의 초라한 관직을 벗어나기엔 너무나 내세울 것 없었던 그가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 서게 되는데요. 바로 정조와의 만남입니다. 당시 정조는 홍인한, 정후겸이 포진된 벽파세력으로 부터 목숨까지 위협을 받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시절로 홍국영의 충성심과 비범함은 자신을 막..
어제 방영된 드라마 의 내용 중 편전 회의에서 "추쇄(도망친 노비를 쫓는 것)와 노비에 대한 수탈을 없애고 노비들이 일정 기간을 채우면 양인이 될 수 있도록 해 결국엔 노비들이 없어지게 하겠다”라는 노비제 폐지안을 들고나와 노론중신들의 반발을 일으키는데요. 이에 정순왕후의 사주를 받은 최석주(심환지로 추정되는 인물)는 정조에게 “사노비를 제외한 노비제도의 폐지는 받아들이겠다. 사노비 철폐를 철회해주면 중신들을 설득하겠다”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만일 정조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전면적인 노비제 폐지는 물 건너가고 공노비제도만 없어지게 되는데요. 실제 역사에서 정조가 일궈낸 노비개혁의 성과는 어떠했을까요? 신분제에 대한 큰 변화가 발생한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노비에서 양인으로, 양인에서 양반으로..
어제 방영된 드라마 "이산"에서 정순왕후가 홍국영과 독대를 하며 노론 벽파의 수장인 장태우 대감(이재용 분)의 퇴출을 놓고 이른바 빅딜을 제안하는데요. 과연 장태우 대감은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드라마 속에서 노론 벽파의 수장으로 영조때 유배당했다 정조때에 재기용되는 설정으로 추리해볼 때 아마 좌의정 김종수(金鍾秀, 1728~1799)일 가능성이 큰 듯합니다. 김종수는 정조가 세손 시절 때부터 정조에게 큰 영향을 준 스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보위에 오른 후엔 드라마에서처럼 정조와는 모든 면에서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인물인데요. 정조가 김종수를 다시 불러들일때 '내 곁에서 항상 쓴소리를 해달라'며 당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처럼 김종수는 규장각 설립, 화성 축조, 탕평정책등 정조가 펼치려 했던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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