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손자이자 2대 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무휼)의 일대기를 그린 KBS "바람의 나라"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아쉽게도 대무신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과 후의 이야기를 모두 다룰 것이라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대무신왕이 대소왕을 죽이고 왕이 되면서 종영되고 말았는데요. 앞선 포스트에서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9/01/08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바람의나라]무휼(대무신왕), 그 치열했던 일대기는? 그렇다면, 대무신왕이 죽은 후의 고구려는 어떠했을지 언급하기로 합니다. 1. 불운한 황제 4대 민중왕 총애했던 호동왕자가 죽은 뒤 대무신왕은 제1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해우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서기 44년 대무신왕이 4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태자는 너무 나이..
유리왕의 세째 아들인 무휼은 어릴 때부터 그 총명함이 남달라 6세의 어린나이에 이미 부여의 사신이 유리왕을 꾸짓는 것을 보고 그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았다합니다. 이같은 총명함에 무휼은 15세의 어린나이에 고구려 제 3대왕에 등극하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역시를 통틀어 신왕(神王)이란 호칭을 얻은 유일한 군주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일대기를 소개합니다. 14년(유리왕 33) 11세로 태자(太子)로 책봉되어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음 18년 유리왕이 죽은 뒤 고구려 제 3대 황제가 됨 (15세) 21년 12월 부여 선제공격. 22년 2월 괴유 장군이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임. (하지만 자만심으로 인한 무리한 진격으로 전쟁에서는 패함) - 대소왕의 막내 동생은 부여를 빠져나와 갈사국(曷思國)을 건..
어린 시절 신동으로 불릴 만큼 총명함을 드러내던 무휼은 불과 10세 되던 해에 고구려를 침략한 부여군을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무휼은 적을 산골 깊숙히 끌어들여 골짜기에 적을 가두고 기습전을 펼쳐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합니다. 이듬해 11세 되던 해에는 태자에 책봉되어 유리왕를 대신해 군사와 국정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으니 무휼의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왕재임엔 분명했던거 같습니다. 4년 뒤인 서기 18년 10월에 무휼은 유리왕의 뒤를 이어 15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되는데요. 이때부터 고구려의 과감한 팽창정책이 시작됩니다. 대무신왕(무휼)이 전공을 세운 대표적 사례를 몇가지 소개합니다. ☞ 대소왕을 죽였으나 전쟁에는 패한 동부여와의 전쟁 서기 20년 10월, 부여의 대소왕은 대무신왕에게 몸은 ..
12/10 방영된 바람의 나라 27회에서는 배극이 반란을 일으켜 유리왕을 인질로 하여 무휼에게 투항을 권하는데요. 이에 반란군 군영에 갇혀 있던 유리왕은 자신의 존재가 무휼에게 큰 부담이 될 것임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결심을 해 극의 긴장감을 한층 높였습니다. KBS "바람의 나라"에서 보여주는 고구려 2대 유리왕의 모습과는 달리 동부여 대소왕의 막강한 영향력에 전전긍긍하다 전쟁을 피하고자 태자 도절을 볼모로 보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나약한 모습과 화희(禾姬)와 치희(雉姬)의 두 여인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미련함도 모자라 둘째 해명태자를 죽게 만든 원인 제공자로 보는 이도 더러 있습니다. 이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드라마상의 모습과는 달리 참으로 인간적인 냄새가 풍겼던 유리왕은..
무휼은 2명의 부인에게서 각각 1명씩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의 정비인 제1 황후는 제5대왕 모본제의 어머니이며, 제2 황후는 갈사왕의 손녀 금씨로 호동왕자의 어머니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제1 황후는 대무신왕의 정비이자 제 5대왕 모본제의 모후임에도 드라마에서 "이지"로 불리는 그녀의 성씨와 기록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다만 '삼국사기' 대무신왕 15년 11월 기사에 호동왕자를 모함했던 짧은 언급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호동왕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며 제 블로그에서 다룬 "미리 보는 2009년 방송사별 대표 사극"에 소개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호동은 대무신왕(무휼)의 총애를 받았고 그 때문에 제1 황후는 무휼이 그녀의 소생인 해우를 밀어내고 호동을 태자로 책봉할지에 ..
KBS "바람의 나라"는 우리가 잘 몰랐던 또 한 명의 고구려 영웅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시작에 앞서 유리왕의 자식들에 대한 실제 역사 속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 참고 글 2008/09/10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바람의나라]제대로 알면 200% 재미있는 바람의 나라 이번엔 무휼이 왕이 된 후 동부여의 대소왕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무휼의 심복 "괴유"와 "마로"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드라마와는 달리 이 두 사람은 유리왕이 죽고 나서 15세의 나이로 왕이 된 대무신왕(무휼)이 18세에 부여를 정복하기 위해 출정한 원정길에서 만난 인물들입니다. 1. 대소왕의 목을 벤 "괴유" 삼국사기에 의하면 괴유는 9척 장신에 얼굴은 희고 ..
해명태자가 자결한 후 유리왕은 장남인 도절과 둘째 해명, 두 아들을 죽게 만든 잔인한 임금이라는 백성의 원성을 듣게 되고 고구려의 민심은 심한 동요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를 기회 삼아 동부여의 대소는 유리왕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을 섬기지 않으면 고구려를 침략할 거라 협박을 하자 고구려에는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국운은 끝난 게 아니었으니 이 무렵 동부여에서도 대소와 그의 여섯 형제들 간에 내분이 발생하여 유리왕은 동부여의 침입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죠. 몇 년후 한나라와 고구려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이 틈을 노려 대소가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고구려 수비대의 전략에 말려 대패하고 마는데요. 이 수비대를 이끈 인물이 바로 무휼왕자였습니다. 계속된 승전으로 자신감을 얻은 유리왕은 같은 ..
해모수는 북부여의 왕이자 천제의 아들(天子)로 어느 날 강가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유인하여 주몽을 갖게 한 후 사라집니다. 유화를 강제로 취한 해모수는 이때 이미 늙은 몸으로 그에게는 해부루라는 아들과 금와라는 손자까지 있었습니다. 또한, 금와는 해부루의 뒤를 이어 동부여의 왕위를 물려받은 상태였습니다. 딸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하백은 유화를 쫓아버리는데요. 쫓겨난 유화는 아이의 아버지인 해모수를 찾아 부여로 향하는 도중 위험한 지경에서 뜻밖에 금와를 만나 동부여로 가서 자신의 손자뻘 되는 금와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여기서 낳은 아들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입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에 능했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주몽"이라는 이름도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하죠. 이런 주몽의 능..
어제 방영된 [바람의 나라] 첫 회에서 고구려의 노예상 마황(김상호 분)이 유리왕의 애정행각을 비꼬며 시를 하나 읊었는데요. 훨훨나는 저 꾀꼬리 암수정답게 노니는데 외로울사 이 내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흔히 황조가(黃鳥歌)로 불리는 이 가요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황후 송씨가 죽자 유리왕은 두 명의 여인을 후궁으로 들이는데 바로 화희(禾姬)와 치희(雉姬)입니다. 화희(禾姬)는 송씨와 같이 유리왕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선택한 여인으로 그녀의 집안은 당연히 당시 최고의 명분가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치희(雉姬)는 천한 신분이나 빼어난 미모로 유리왕의 맘에 들어 선택된 여인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입궁한 화희(禾姬)와 치희(雉姬) 잦은 다툼으로 말미암아 결국 파국을 맞게 되..
9/10 첫 방영 예정인 KBS 바람의 나라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 한 명의 고구려 영웅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인데요. 드라마 감상에 앞서 드라마적 허구로 재탄생된 등장인물들과 실제 역사 속 배경을 미리 언급함으로써 시청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포스팅해봅니다. 먼저 유리왕을 중심으로한 가계도를 살펴봅니다. 그림처럼 동명성제(추모 또는 주몽)의 뒤를 이어 유리왕은 고구려의 2대 왕이 되었으며 이후 송양의 두 딸들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얻게 됩니다. 여기서 송양은 MBC "주몽"에도 등장했던 비류국의 왕으로 주몽에게 패하여 고구려의 신하가 된 인물입니다. 주몽이 연씨(소서노)와 혼인한 것 처럼 유리왕이 송양의 두 딸과 차례로 혼인한 것 또한 정략적인 면이 강하다 판단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