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에서는 셋째 아이를 가진 의빈성씨가 장결병(간경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로는 셋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거나 그 직전에 사망한 것으로 실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의빈(宜嬪) 성씨(成氏)가 졸(卒)하였다. 하교하기를, “의빈의 상례(喪禮)는 갑신년의 예에 따라 후정(後庭)의 1등의 예로 거행하라.” 하였다. 처음에 의빈이 임신하였을 때 약방 도제조 홍낙성이 호산청(護産廳)을 설치하자고 청하자, 출산할 달을 기다려 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병에 걸려 졸(卒)한 것이다. 임금이 매우 기대하고 있다가 그지없이 애석해 하고 슬퍼하였으며, 조정과 민간에서는 너나없이 나라의 근본을 걱정하였다. 홍낙성이 아뢰기를..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노론 세력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는데요. 그가 보위에 오른 후에도 그의 안위는 그다지 안전치 못하여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둘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당연히 정조의 가족들 또한 그 위협의 사정권 안에 들었던 건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다른 왕조에 비해 정조 또는 그의 가족이 사망한 후 유독 독살설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중 널리 알려진 것이 정조 독살설인데요. 정조가 승하할 당시 정순황후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독살설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도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지병악화로 인한 사망설이 지배적이기도 합니다. ☞ 문효세자의 죽음 정조가 왕이 된 후에도 노론세력의 견제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조가 계획하고 행했던 모든 개..
의빈성씨에 관한 글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이산]에서도 결국 문효세자는 죽음을 맞는군요. 정비인 효의왕후 이래 두 명의 후궁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했던 정조가 그의 정인 의빈성씨에게서 나온 문효세자를 얼마나 귀히 여겼는지는 [이산]에서도 잘 묘사되었는데요. 과연 문효세자는 죽음을 맞은 정조의 슬픔은 어느 정도였는지 실록을 통해 알려드립니다. ☞ 정조 10년(1786) 윤7월 19일(경인) - 문효 세자를 장사지내다. 문효 세자(文孝世子)를 효창묘(孝昌墓)에다 장사지냈다. 이날 새벽에 발인을 하였는데, 임금이 홍화문(弘化門) 밖에 나와서 곡하고 전별(餞別)하였다. 다시 홍화문 안의 악차(幄次)로 돌아와서 영여(靈輿)가 도성 밖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 임금이 흑립(黑笠)과 백포 첩리(白布帖裏)를 다시 입..
얼마전 화빈이 정조의 세번째 후궁이 아닌 사실은 화빈 윤씨에 관한 글을 통해 드라마 [이산]의 시간적 오류를 바로 잡은 바 있는데요. 5/20 방영분에서는 아예 화빈과 송연이(후에 의빈성씨)의 출산일을 같은날로 묘사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켰습니다. 물론 드라마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겠지만 두 사람 다 실제 인물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설정은 자칫 사극의 특수성으로 인해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어 두사람의 출산일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화빈 파평 윤씨는 정조 4년에 두번째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며 이듬해(정조 5년) 딸을 낳았으나 안타깝게도 옹주가 일찍 죽은 이후로는 소생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소생이 일찍 죽어 왕실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는 이름이 오르지 못한 화빈은 순조 24년 1월 ..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예를 따라 왕의 적처는 후(后)라 하지 않고, 격하하여 비(妃)라 하고, 후궁들에게는 내명부의 벼슬을 주어 숙원(淑媛:종4품)·소원(昭媛:정4품)·숙용(淑容:종3품)·소용(昭容:정3품)·숙의(淑儀:종2품)·소의(昭儀:정2품)·귀인(貴人:종1품)의 순으로 올리고, 후궁의 으뜸은 빈(嬪:정1품)이라 하였습니다. 이 빈(嬪)에는 처음부터 왕의 후사(後嗣)를 위하여 왕비나 세자빈과 같이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하여 들어오는 경우와, 궁녀로 들어왔다가 왕의 총애를 입어 왕자를 낳고 궁녀에서 소용·숙의 등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원빈이나 화빈과는 달리 송연이가 승은을 입고서도 내명부의 벼슬을 받지 못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장희빈(張禧嬪) 등을 포함하여 역대 빈..
제가 쓴 드라마 이산에 관한 포스트를 읽으신 분이라면 다들 아실 테지만 어제 처음 등장한 화빈 윤씨는 원빈 과 송연이(의빈 성씨)에 이어 간택된 정조의 세번째 후궁이 아닙니다. 원빈과 의빈 성씨에 관한 포스트에 이어 정조의 가계도를 다시 보며 화빈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비 효의왕후 청풍김씨 ( 자녀없음 ) 제1후궁 원빈 풍산홍씨 ( 자녀없음 ) => 홍국영의 누이 제2후궁 화빈 파평윤씨 - 서1녀 옹주 제3후궁 의빈 창녕성씨 - 서1남 문효세자, 서2녀 옹주 제4후궁 수빈 반남박씨 - 서2남 순조, 서3녀 숙선옹주 남원윤씨 좌찬성 윤창윤의 딸로 영조 41년에 태어난 그녀는 원빈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1년 뒤인 정조 4년에 두번째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며 이듬해 딸을 낳았으나 안타깝게도 옹주가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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