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예를 따라 왕의 적처는 후(后)라 하지 않고, 격하하여 비(妃)라 하고, 후궁들에게는 내명부의 벼슬을 주어 숙원(淑媛:종4품)·소원(昭媛:정4품)·숙용(淑容:종3품)·소용(昭容:정3품)·숙의(淑儀:종2품)·소의(昭儀:정2품)·귀인(貴人:종1품)의 순으로 올리고, 후궁의 으뜸은 빈(嬪:정1품)이라 하였습니다. 이 빈(嬪)에는 처음부터 왕의 후사(後嗣)를 위하여 왕비나 세자빈과 같이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하여 들어오는 경우와, 궁녀로 들어왔다가 왕의 총애를 입어 왕자를 낳고 궁녀에서 소용·숙의 등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원빈이나 화빈과는 달리 송연이가 승은을 입고서도 내명부의 벼슬을 받지 못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장희빈(張禧嬪) 등을 포함하여 역대 빈..
영조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 죽은 아들에게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렸으며, 1777년 그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올라 장헌(莊獻)으로 추존하고, 사당을 경모궁, 묘(墓)를 영우원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정조는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던 묘를 수원으로 옮겨 영우원을 현륭원(顯隆園)이라 고쳤고 정조 9년(1785) 능행(陵幸 : 임금이 능에 거둥함)을 단행하는데요. 정조의 능행(陵幸)은 단순한 효(孝)의 의미가 아닌 능행을 통해 먼저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얻으려 했던 거 같습니다. 또한, 능행이란 형식을 통해 상공업 발달로 사회 변동이 활발하던 수도권을 직접 방문, 사대부와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갈등과 분쟁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먼저 아래 음악부터 들어보세요. IN-GRID라는 이탈리아 가수의 2005년 발매된 앨범 VOILA(ENGLISH판)에 수록된 "ONE MORE TIME"이라는 곡인데요. 바로 쥬얼리의 신곡"ONE MORE TIME"의 원곡입니다. 쥬얼리 측에서는 리메이크곡이라 하지만 중간의 랩 부분과 마지막의 추가 멜로디를 빼고 나면 차라리 번안곡이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참고 : 최근 이 곡이 인기를 얻은 만큼 여러 블로그, 카페 및 개인홈피에 쥬얼리노래의 원곡이라며 링크를 걸어두신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자료에 오류가 있더군요. 시험정답이 "로댕"인데 커닝을 잘못해서 "오뎅"으로 쓴 것처럼 초창기에 누군가가 쥬얼리의 원곡을 부른 IN-GRID의 대표인음악인 "Tu Es Foutu (You Promised Me)..
톱스타를 대거 포진시켜 시청률을 올리는 일종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드라마의 전략이 변하고 있습니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자랑하는 외국 드라마를 통해 이미 시청자의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인데요.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불리던 고액 출연료를 받는 톱스타들이 출연해도 진부한 이야기 전개와 떨어지는 완성도 앞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게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SBS의 "푸른 물고기"를 들 수 있는데요. 고소영이 긴 공백을 끝내고 출연해 초반 관심을 끄는 덴 성공했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물론 남녀주인공의 어색한 연기호흡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소위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진부한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 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을 했습니다..
제가 쓴 드라마 이산에 관한 포스트를 읽으신 분이라면 다들 아실 테지만 어제 처음 등장한 화빈 윤씨는 원빈 과 송연이(의빈 성씨)에 이어 간택된 정조의 세번째 후궁이 아닙니다. 원빈과 의빈 성씨에 관한 포스트에 이어 정조의 가계도를 다시 보며 화빈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비 효의왕후 청풍김씨 ( 자녀없음 ) 제1후궁 원빈 풍산홍씨 ( 자녀없음 ) => 홍국영의 누이 제2후궁 화빈 파평윤씨 - 서1녀 옹주 제3후궁 의빈 창녕성씨 - 서1남 문효세자, 서2녀 옹주 제4후궁 수빈 반남박씨 - 서2남 순조, 서3녀 숙선옹주 남원윤씨 좌찬성 윤창윤의 딸로 영조 41년에 태어난 그녀는 원빈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1년 뒤인 정조 4년에 두번째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며 이듬해 딸을 낳았으나 안타깝게도 옹주가 일찍..
먼저 과거시험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는 문·무 양과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문과를 중시하였는데 문과에는 생원·진사과 및 잡과로서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 등이 있었습니다. 생원·진사과는 소과라 하여 15세 이상인 자가 응시할 수 있었고 소과에 합격하면 성균과 입학자격을 주고 하급관리로 채용할 수 있었습니다. 고급 관리가 되려면 대과에 응시해야 했는데 대과에는 성균관 출신과 소과 합격생이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정약용은 정조 7년 의빈성씨가 낳은 문효세자의 세자책봉을 기념하는 과거시험에서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됩니다. (하지만 [이산]에서는 정약용이 대과에 합격하였는데 의빈성씨는 회임조차 하지 않네요.) 정약용은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과제에서는 매번 장원 또는 그에 버금가는..
태종 4년 11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된 양녕대군은 폐세자가 된 후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기행을 일삼았는데요. 이 수많은 기행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복잡한 여자관계였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상왕의 첩 초궁장을 건드려 문제가 되었지만 상왕의 기생인 줄 몰랐다는 양녕의 변명이 통하여 위기를 모면했죠.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곽선의 첩 어리와의 스캔들로 인해 양녕은 결국 폐세자가 되고 맙니다. 기생의 신분이었던 초궁장과는 달리 어리는 유부녀의 신분이었기에 세자의 신분으로 감행된 유부녀와의 간통은 왕실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리는 큰 죄임에 분명했던 것입니다. 양녕은 곽선의 양자를 위협해서 어리를 납치하려 했었는데 김한로(양녕의 장인)가 이사실을 알고도 양녕을 자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여색을 탐하는데..
드라마 "이산"에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박은혜 분)를 대신해 홍국영의 누이 원빈이 후궁으로 입궁했는데요. 어제부터 효의왕후(박은혜 분)와 원빈과의 미묘한 갈등이 시작되어 그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바로 성송연(한지민 분)에 대한 원빈의 질투가 원인으로 작용했는데 실제 역사자료에 원빈은 어떻게 서술되었을까요? 일단 원빈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정조의 가계도를 먼저 보여드릴게요. 정비 효의왕후 청풍김씨 ( 자녀없음 ) 제1후궁 원빈 풍산홍씨 ( 자녀없음 ) 제2후궁 화빈 파평윤씨 - 서1녀 옹주 제3후궁 의빈 창녕성씨 - 서1남 문효세자, 서2녀 옹주 제4후궁 수빈 반남박씨 - 서2남 순조, 서3녀 숙선옹주 위처럼 후사가 없는 정비 효의왕후(박은혜 분)를 이어 후궁으로 들어온 홍국영의..
어느 가을 좌참찬 김시묵의 집에 기이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미 져버린 마당의 꽃들이 다시 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 최고의 천사표 여인 효의왕후가 태어날 징조였던 것입니다. 먼저 어렸을 때부터 온화하고 덕스러움이 몸에 배어있던 그녀의 성품이 잘 드러나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어린시절 어느날 아이들과 같이 놀았는데, 어떤 아이가 자라나는 풀을 뽑고 있었다. 그러자 그 아이에게 책망하기를 ‘풀이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왜 뽑아 한창 자라나는 생기(生氣)를 해치느냐?’라고 하였다. 생물에 미친 사랑과 사람을 가르치는 정성이 어렸을 때부터 이와 같았으므로, 그 광경을 보고 그 소문을 들은 친척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다. 이런 그녀의 평판은 궁궐까지 들어가게 되어 영조 37년(1761)에 아홉 살..
정조가 보위에 오르기 전 세손 시절엔 익위사(翊衛司)란 조직이 세손의 안위를 살폈는데 드라마에선 이 익위사의 관원들이 정조가 왕이 된 후 홍국영의 건의로 설치된 숙위소에 고스란히 합류하게 되죠. 영조시대에는 세손을 지키는 익위사외에 영조를 호위하는 군사조직이 별도로 있었으니 바로 용호영(龍虎營)입니다. ☞ 용호영 (龍虎營) 전신이었던 금군은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의 소위 3위가 있었는데, 효종 3년에 내삼청을 설치하고 금군을 맡아 지휘하게 하였다가 영조 31년(1755)에 용호영(龍虎營)으로 개명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영조가 승하한 후 정조가 보위에 오르는데 내금위장의 역할이 컸었는데 이때는 이미 내금위가 용호영으로 바뀌었으니 조금 이상하네요. 아무튼, 용호영은 병조판서가 책임자로 있었으며 인원은 1,..
먼저 충녕대군은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경성에 유배된 적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드라마에서 역사에도 없는 기발한 설정을 하게 된 이유는 첫째, 양녕이 폐위되는 원인을 제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해서고 둘째, 세종시절 가장 신임받았던 두 인물과의 처음 만남을 풀어내기 위한 작가의 미봉책인 듯싶네요. 충녕이 함길도 경성에서 만난 최윤덕(崔潤德)과 이천(李蕆,)을 소개합니다. ☞ 무관 출신이 정승이 되다. 축성(築城)대감 최윤덕(崔潤德) 고려말~조선 초의 명장 최운해(崔雲海)의 아들인 최윤덕은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국경의 수비에 나가 있어 한마을에 사는 양수척(楊水尺:고려의 천민 계급, 후에 백정으로 불려짐)에 의하여 양육됐습니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활을 잘 사용한 최윤덕은 소에게..
약 1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영화가 있었습니다. 실제 상황을 캠코더로 찍은 듯한 사실적인 표현과 줄거리로 저예산에도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었는데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은 아주 극과 극이었죠. 그중엔 심하게 떨리는 영상으로 어지럽기까지 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지금 소개할 영화도 멀미약을 챙기고 봐야 할 정도의 심하게 떨리는 화면을 제공합니다. 바로 클로버필드(Cloverfield)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고질라와 우주전쟁이 생각났었는데 클로버필드는 고질라처럼 몬스터가 등장하며 우주전쟁처럼 주인공이 영웅이아닌 정체 모를 무언가에 도망 다니기 급급한 일반인들입니다. 등장 인물의 인간관계나 애정관계등이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보단 비교적 잘 묘사되어 나중이야기의 복선이 되기에도 ..
사도세자는 혜경궁 홍씨에게서 의소세자(요절)와 정조를, 숙빈 임씨에게서 은언군과 은신군을, 경빈 박씨에게서 은전군을 생산했으므로 은언군은 정조의 이복동생이 됩니다. 따라서 은언군의 아들인 이담은 정조의 조카가 되구요. 은언군은 욕심이 많아 시전 상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나중엔 시전 상인에게 빚을 진 것을 할아버지인 영조가 알고 유배를 당하기도 했던 인물이었으며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 노론 벽파를 조종하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세손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세손으로 낙점했던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드라마에서는 홍국영이 죽은 누이(원빈)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다는 핑계로 은언군의 장자인 담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는 데 성공하는데요. 원빈의 양자는 결국 정조의 양자이므로 정조는..
조선시대의 경제는 한성의 시전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실과 관아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대신에 도성 내에서 독점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금난전권(禁亂廛權)입니다. 금난전권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난전에 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난전은 시전에서 취급한 물종과 상인의 주소, 성명을 등록한 상행위자의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자나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성안에서 몰래 판매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생계형 상인들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이래 난전의 등장은 곧 시전상인의 상권을 침해하였고, 이에 시전상인은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만들기 위해 난전 금지를 정부에 요청하였는데요. 이에 정부는 재정수입을 늘릴 목적에서 국역을 부담하는 육의전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태종(이방원)의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최명길 분)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말~조선 초의 충신 민제의 딸로 양녕,충녕을 포함한 4남 4녀를 두었습니다. 태종보다 2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태종이 집권하는데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었으나 왕비가 된 이후에는 두 사람사이에 불화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태종은 외척인 민씨일가의 권력 분산과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후궁을 늘려나갔고, 민씨는 이에 대해 병적으로 보일 만큼 투기와 불평으로 태종의 심기를 흔들었는데 이즈음 태종은 세자인 양녕에게 왕위를 넘길 뜻을 표명하는데 바로 1차 선위 파동이었습니다. ☞ 민무구,무질 옥 1차 선위 파동을 계기로 민씨 형제의 교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외척 세력으로서 원경왕후와 양녕의 후광..
2006, 2007년은 그야말로 사극의 전성시대였죠.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등의 대작들이 고구려, 발해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가히 폭발적이라 할만큼의 사극신드롬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개소문은 방영 초반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부실한 스토리 전개와 미흡한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에 휩싸여 후발주자인 대조영에 밀려 20%도 되지 않는 시청률로 종영되고 말았지만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처럼 퓨전 사극이 아닌 정통사극의 새 가능성을 대조영과 함께 보여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주몽은 4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최고의 국민드라마가 되었지만 허술하고 작은 스케일의 전투신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태왕사신기는 역사물이기 이전에 판타지 성격이 강해서 전투신에서도 cg를 이용한 ..
조선시대에는 천주교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4차례 있었는데요. 국사시간에 귀가 아프게 들은 바 있는 바로 "4대 박해"라 불리는 것입니다. 정조 다음에 왕이 된 순조~고종 때까지의 4차례에 걸친 천주교탄압을 통칭하는 말이니 정조와 천주교 탄압은 무관한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참고. 4대 박해 요약 -1801년의 신유박해 - 순조 - 노론 벽파에 의한 대대적 정치적 박해 정약종, 이승훈, 주문모 순교, 정약용, 정약전 유배 (약 100명이 처형되고 약 400명이 유배) -1839년의 기해박해 - 헌종 - 샤스탕, 앙베르, 모오방 프랑스 선교사 순교 (약 100명이 처형) -1846년의 병오박해 - 헌종 - 김대건 신부와 그 와 관련된 천주교인 9명이 순교 -1866년의 병인박해 - 고종 - 최대 ..
홍국영은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등이 포진되어있는 외척세력 풍산홍씨의 일문이었으나 그의 아비가 그다지 정치에 관심이 없던 터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드라마 초반에서 보이는 홍국영의 행태처럼 그의 청년기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 탓에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웠을 테니 과거급제도 힘겨워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실제로 문헌에는 그가 지닌 지적 역량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시강원 설서의 초라한 관직을 벗어나기엔 너무나 내세울 것 없었던 그가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 서게 되는데요. 바로 정조와의 만남입니다. 당시 정조는 홍인한, 정후겸이 포진된 벽파세력으로 부터 목숨까지 위협을 받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시절로 홍국영의 충성심과 비범함은 자신을 막..
음악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 해보신 적이 있나요? 가난한 마음을 풍요하게 하기도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어 사랑의 결실이 구체화되기도 하는 음악의 힘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울 뿐입니다. 여기 음악의 힘을 또 한 번 제대로 느끼게 해줄 뻔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입니다. 이 영화의 초반은 대단히 흥미진진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하룻밤을 보낸 록가수와 첼리스트 사이에서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버린 소년의 안타까움과 선천적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타고난 천재성이 두각 되는 처음 이야기는 영화를 몰입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음악천재의 성장기가 기대되는 영화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소년이 부모를 찾기위해 고아원을..
점퍼(Jumper)는 스티븐굴드의 동명 소설 을 영화화한 것으로 어릴 때부터 특수한 능력을 갖춘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룬 이야기가 중심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철저히 오락영화로 다시 태어나며 A4용지 한 장으로도 충분한 줄거리에 화려한 CG들로만 포장된 채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주인공이 텔레포트라는 특수능력을 갖추게 된 배경을 영화에서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단지 17살에 우연히 알게 된 능력으로 쾌락에 빠진 자제력이 부족한 그저 그런 청년으로 묘사될 뿐이죠. 여자친구와의 러브라인도 액션장면으로 채우기 어려운 90분이라는 런닝타임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팔라딘이라는 유별난 집단과의 대결구도 또한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시작부터 점퍼들을 무조건 죽이려 드는 이들의..